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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악산의 밤 하늘은, 달하나만 덩그러니 외롭게 떠있었다. 모든 다른 별들의 빛들은 달빛에의해 묻혀버렸다. 지구 밤 하늘계의 제 1인자인 달은 스스로 천상천하 유아독존을 외치며 자신의 자리를 고수하고 있었다.
사람이 언어를 만든지 2만년이 지났고, 한글을 창제한지 5백년이 흘렀음에도, 나는 아직 이 설악산의 풍경을 설명할 만한 단어를 찾아내지 못하고 있었다. 내 필력의 모자람과 부재된 감수성을 거대한 자연앞에서 작은 미물이 되고서야 깨닿고 말았다. 수억년간 변화를 거듭하며 만들어진 이 설악산 풍경은 내가 가지고 있던, 내 속에 잠재되어있던 세계 그 이상을 뛰어넘은데다가 그 모든 상상력을 초월한 거대한 자연이었다.
산은 덩그러니 놓여있는 나를 발견한다. 그저 한낱 조그만하고 별거아닌 생명체에 불과해졌다. 강을 파내고, 하늘을 날으는 인간인데, 그냥 흙에서 태어나 흙으로 돌아가는 피조물이라는 것을 인식하고 만다.
작은 목탁소리가 산 속을 울리기 시작한다. 아마 절에서 저녁예배를 시작한 모양이었다. 그 어떤 누구의 생명마저 잠식해버릴 만한 위력을 지닌 어둠이 깔린 산에서, 목탁 소리만이 생명의 기운을 포교하고 있었다. 기와지붕 밑에서 드리워진 그림자가 부드럽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하늘의 달 빛은 고도를 바꿔가며 설악산의 어둠을 밝혀주었다. 산 바람은 물 먹은 솜처럼 느릿하게 흘러갔지만, 포근하고 시원스럽게 느껴졌다.
나는 지금 설악산 위에서 존재하고 있다. 바람에 이끌린 나뭇잎의 아우성처럼, 묵묵히 어디선가 자리를 지키고 있다. 한없이 가볍고도 불품이 없었다. 하늘의 달 빛만이 내 존재를 가늠케 만들었다.
바람은 포근했다. 내륙지방에서 바다를 향해 바람이 부는 것임을 알 수 있었다. 바람이, 밤인데도 따스하게 느껴졌다. 산의 체온이 바람에 옮겨 붙은걸까. 바람이 불면서 나뭇잎들은 속삭이고, 이름모를 작은 식물들은 장단에 맞쳐 춤을 췄다. 검은 어둠만이 침식한 이 공간에도, 생명의 기운은 구석 구석 침투해 있었다.
만월이다. 웅장한 산의 뒷태가 보인다. 나뭇가지의 흔들거림이 그림자에 비췄다. 작은 생명들이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 있었다.
설악산에서 바라본 달.
보름달이 떠버리자, 별들이 어둠 속으로 도망쳐 버렸다. 보름달은 외로워 하며 하늘을 방황했다.
"외로워 마요. 별들은 떠나갔지만 저는 당신을 바라보고 있으니까요."
하지만 보름달은 서서히 땅 밑으로 숨어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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