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 느꼈던 운명의 사랑이라는 것은 대게 상상으로부터 찾아왔다. 상대방이 가진 그 무언가에 내 상상력을 보태어 더욱 크게 만들어 더욱 대단한 것으로 만들곤 했다. 그것이 사랑이냐 아니냐를 말하기 전에, 내 마음 속에 품어져왔던 상대방의 모습에 흠벅 젖어들 수 밖에 없었다. 어린 나이가 매력적인 것은 서로가 서로로써 살아온 세월이 길지 않은 탓에 같이 많은 것들을 세워나갈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서로가 서로 자신에 대해서 모르기 때문에 자신의 호불호를 모른체 부딪쳐버린다는 것이다. 비극은 이 지점에서 발생하고 만다. 자신의 호불호도 어떻게 가려내야할지 힘든 그들에게 이제 막 낯선 세상을 살아가는 어린 타인의 호불호를 맞쳐줄 수 있을까. 그렇기 때문에 서로가 서로에게 이끌..
섹시라는 단어를 처음 알게 되었을 때, 그 느낌은 묘했다. 중학교 시절 TV에서 자주 단어들이 언급되면서 나왔는데, 어째서 "sex"와 "y"가 분리되서 보이던지. 혼자서 매우 후끈거리고 뜨거워서 TV를 보지 못했다. 다들 그렇겠지만, 그 시절 그 나이때는 단어 하나로도 히히덕거리며 상상력을 펼쳐가며 짖굳은 이야기들을 하던 때가 아니던가. 그런데 그걸 부모님을 앞에 두고 TV에서 그런 단어가 튀어나오고 있으니 정말 어찌할 바를 몰랐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최근에는 이런 단어들이 자주 쓰인다. TV나 광고, 이런 뻔한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주변에서 아는 사람들이 내게 섹시(sexy)라는 단어를 많이 언급한다는 점이다. 이것이 "저 배우, 참 섹시한데?"라는 성적인 표현이나, "저분 참 섹시한데, 색..
맥락을 살아가기내가 좋아하는 것을 찾는다는것을 넘어서 방향을 찾는 다는 것군 대를 마칠때 쯤 생각이 난다. 군대라는 특수한 상황도 상황일지도 모르겠지만, 이 시기쯤 되면 많은 사람들은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어떤 미래를 꿈꾸어야할지 등등의 질문들이 던져지고 답하기 시작하는 시기인 것 같다. 군대에서의 많은 이들은 아무런 준비없이 무탈하게 보내기도 하지만, 몇몇 사람들은 자신의 미래를 위해 밤마다 독서실 불을 켜가며 공부를 하였다. 그 가운데서 나는 이도저도 아닌체 독서실 구석에 자리를 잡고 책을 읽곤 했었다. 군대 도서관에 있는 책을 읽고, 도서관에서 부족한 사회과학책들은 매번 택배를 통해 구입하곤 했었다. 무언가 답을 얻고자 했던 일들은 아니였다. 다만 이 독서들 덕분인지는 몰라도, 그 가운데서 사람의 ..
아마 지금, 내 마음을 풀어 쓸 작정이다. 나는 왜 이렇게 가슴이 벅차고 충만한 하루를 맞이하고 있을까. 이전처럼 과장해서 쓰고 싶지 않다. 그건 죄악이다. 내 벅차오르는 가슴에대한 억압이다. 나 있는 그대로를 글로써 그려야한다. 내 심장은 그렇게 말하고 있으며, 내 머리에서 떠오르는 문장들도 그와 같다. 지난 새벽, 거리를 혼자 터벅터벅 걸어가며 많은 생각을 했다. 나는 울어야하는 것이 아닐까. 슬퍼야하는 것이 맞지 않을까. 그러나 이상하게도 저 멀리 있던 달이 맑고 투명하게 보였고, 내 마음 역시 갓 목욕하고 나온듯 깨끗한 심정이였다. 왜일까. 적막한 도로를 가득 채운 스산한 바람이 내 옆을 지나갔다. 추워야할 새벽. 나는 따뜻했다. 내 마음은 따뜻했다. 그 먼길을 굳이 걸어가고 있는 나임에도, 싸구..
도덕이라는 틀이 왜 존재하는지 의문을 품었던 적이 있다. 자유-평등-박애라는 슬로건이 왜 일어났는지 궁금했던 적이 있다. 나는 이를 철학적으로 풀어내지는 못하지만, 내 미천한 생각으로는, 아마 인간은 고독하기 때문에 그런게 아닐까 싶다. 나는 타인에게 나쁜 짓을 하고 살 수 없다. 너를 해친다면, 너는 나를 미워할꺼니까, 그럴 수 없다. 고독하기 때문에 사랑받고 싶은 방법이 필요한 것이다. 어쩌면 저 문제의 해결책이 도덕이 아닐까, 자유-평등-박애가 아닐까 싶었다. 이런 생각에서 보건데, 영화에 나오는 시몽(동생)은 누구에게도 사랑받을 수 없는 존재다. 이 아이는 도둑질을 한다. 사람 많은 스키장에서 물건을 훔쳐, 장물팔이를 하여 살아간다. 절대 도덕적이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도둑질하다가 잡힐때 마다..
아밀리에는 고독한 주위 사람들을 행복하게 해주고도 그녀는 제 3자의 입장에서 모두를 바라보며 흡족해 한다. 나는 아주 발랄하고 엉뚱한 그녀에게서 고독을 느꼈다. 남과 섞이지 못했던 경험은 모두에게서 한발짝 물러난 모습을 보이게 만드는 것 같았다. 그랬던 그녀가 누군가와 바로 대면하게 되었을때, 한발짝 다가온 그에게, 놓치지 않은 것은, 놓치면 후회할 사랑이였다는 것을 직감했기 때문이지 않았을까. 강물처럼 흘러가버린 사람을 다시 찾길 원하는 것은 자기만의 아집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런 집념때문에 눈물이 흘러내는 것은 아닐 것이다. 슬픔은, 사랑이라는 몰입을 잃어버린 것에 대한 아픔인 것이니까. 영화의 마지막, 아밀리에의 행복한 모습을 보면서, 삶은 아름다워!라고 외쳐본다.
Edith Piaf - La vie en rose 천천히 달리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 적이 있는데, 이 영화의 대사, '어른이 된다는 것은, 계기판은 210km/h가 있지만 70km/h로 밖에 달릴 수 없는 것.'를 들으면서 비참함만이 나를 감쌌다. 내가 닫아버린 창문은 어떤 거센 비바람에도 끄떡하지 않지만 그만큼 밖의 소음을 들을 수 없다는 것이니까. 아이들 장난처럼 모든 것을 대하다가, 어느날 사랑을 직면했을때. 이해하지 못했다. 서로의 감정을 어떻게 확인해야할지 모른체 게임으로 인식할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얻지못한 사랑에대한 공허는 서로를 다시 이끌어갔다. 서로에게 몰입하는 변치않을 세상으로, 사랑하는 남자와 여자, 이 둘을 영원 속으로 가두어 버렸다.
사랑은 무엇인가요. 느닷없이 찾아와 나를 뿌리채 뒤흔들어버리는 울림이지요. 그래서 그녀의 자그마한 손을 구원의 손길마냥 꼭 잡고 놓아주지 않고 싶었죠. 그러나 너무 꽉 잡아서, 아파서 싫어할 정도로 잡아서, 그녀의 찡그러진 인상에서 나를 보게 되죠. 부드럽던 인상은 어디로 사라지고 아집과 집념만이 남아 모든 것을, 그녀를 붙잡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되죠. 무서워 하는 그녀. 그리고 나의 욕심을 발견한 나. 너무 두려운 나머지, 정말 두려워서, 그러니까 정말 두려우니까, 그렇게 마음을 잡았죠... 안녕, 이라고 말해도 좋을지 모를 그녀에게, 자유라는 이름을 줍니다. Ruby, Look at the last page. I love you...
잡스에 관한 넋두리를 적다가 그만두었다. 그건 내 일기였고, 나의 삶이였고, 내 평온한 호수가에 돌은 던진 인물이 잡스였다는 것을 궁시렁 거렸을 뿐이니까. 2006년도에 그의 비공식 자서전(자신이 쓴 것이 아니다)인 iCon을 읽고 나는 잡스에대해서 단 한마디의 평으로 끝을 맺었다. "괴팍하네". 그는 괴팍 그 자체였다. 자신의 디자인을 위해 엔지니어들을 볶는가 하면, 시장성과 관계없이 자기가 욕구하는 기계만 만들어냈다. 그것을 "혁신"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그저 불필요한 것을 빼고 나왔을 뿐이였다. 그러나 지금의 나는 잡스를 다르게 본다. 그는 기업가였다. 모험심이 강한 기업가였다. 없는 시장을 다시 창조할 줄 알았다. mp3p에 디자인을 넣어 악세사리화 하였으며, PDA의 더딘 발전을 "스마트폰"이..
두근 거리는 마음이 앞선다. 누굴 만나러, 누굴 보러 가는지 정해지지 않은 밤. 가벼운 바람이 스산한 밤기운과 함께 밤거리를 뛰어다닌다. 하늘에는 별이 얼마 없다. 도시에서 별을 보겠다는 것은 꽤나 힘든 일이다. 그래도 지상에 많은 빛나는 것들이 있다. 어렵사리 고개를 들어올려 하늘을 보지 않아도 나는 지상의 별들을 볼 수 있었다. 사방에 정적이 흐른다. 밤의 매력이란게 이런게 아닐까 싶다. 아무도 없어서 무섭고 외로운 듯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이 모든 불편함을 감싸주는 묵직한 침묵의 어둠에 나는 반한다. 내 숨소리와 밤의 먹먹한 공기는 나와 하나가 된다. 조용한 이 오후 10시에, 나는 이 밤의 거리를 걸어간다.
'이티오피아' 춘천의 공지천에 자리를 잡은 커피집이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아프리카의 어느 나라 이름에서 따왔다. 이티오피아, 사실 그건 어느 어떤 나라라는 칭호는 어울리지 않는다. 한때는 아프리카의 선진국에 끼였고, 6.25전쟁때 한국의 중요거점에 병력을 투입했으며, 파병 온 군인들이 자신들의 월급을 모아 한국에 기부했던, 우리에겐 작지만 따뜻한 마음을 보여주었던 사람들의 나라였다. 지금은 공산주의 혁명으로 경제가 파탄에 빠지고 참전 용사들이 핍박을 받고 있지만, 60년대 당시만하더라도 굉장한 선진국이였다. 60년대, 이티오피아 박물관을 설립하게 되자, 이티오피아에서 한국에 원두를 적극적으로 수출해주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 원두를 가지고 한국 최초로 커피가게를 차린 곳이 지금 이 "이티오피아" 가게이..
적극적으로 로스팅된 마이 원두! 원츄! 저 원두는 왈츠와닥터만 박물관의 관장님에게 로스팅을 배우며 얻게 된 것입니다. 여행 하느나 돌볼 겨를없이 가방 구석에 비닐봉지로 꾹꾹 동여매어 놓았는데요, 커피의 향이 슬며서 빠져나와서는 가방 안을 온통 커피향으로 적셔두었습니다. 덕분에, 여행다니는 동안 가방을 열때마다 느껴지는 커피향에 즐거웠습니다. (심심할때 그냥 깨작깨작 먹기도 했는데, 쓴 맛도 그리 강하지 않고 향이 좋아서 정말 맛있었어요. 많이 먹었는데도 저렇게 많이 남아있다는건!!! 관장님 죄송해요. 두스푼만 퍼가라고 했는데 제가 몰래 좀 많이 퍼갔지요 ㅠㅠ) 서론은 여기까지! 집에서 원두커피를 내보기로 했습니다. ,,, (뭔가 전통 핸드드립 방식이긴 한데 어설프죠 ㅠㅠ) 결과물! 박물관 바리스타님께서 ..
Closer ost / Damien Rice - The Blower's Daughter 사랑에서는 모두가 아이였다. 실날같은 바람에도 상처받는 영혼에게, 세상을 향해 솔직한 소녀에게, 수많은 상처에도 일어선 그녀에게, 가장 악해보이면서도 순수하게 사랑을 원했던 그 남자에게도, 모두 아이처럼 사랑을 원하고 있었다. 이야기는 너무나도 단순하다. 모두들 사랑을 갈구하고 그것을 해소하고 지속되길 원한다. 이 사랑은 낯선 이에게로 부터 온 이계적인 물질이다. 지구 중력에 의해 우주 멀리서부터 끌려온 작은 돌덩이들이 별똥별로 하늘을 빛내듯, 어느날 문득 찾아와 문을 두드리는 것이다. 그 방문자는, 반가운 낯선 이에게서, 그대와의 영혼의 대화를 통해 깊은 끌림을 느끼게 해준다. 그렇다. 이 사랑은 전적으로 그대의 내..
[사진출처 - http://www.oisoo.co.kr/ 의 5405님의 게시물에서, "한 나비의 죽음" 사진 ] 가벼운 바람만이 작은 식물들을 잠에서 깨우며 생명의 기운을 전파하고 있다. 옅게 흔들리는 작은 초록의 식물들 사이로 나비 한마리가 침묵 속에 앉아있다. 곧장 날아갈 듯이 보인 이 나비는 미동도 하지 않는다. 한차례 작은 바람이 무심히 나비 옆을 스쳐지나가는 것을 보며 알게 된다. 나비는 죽어있었다. 지난 날의 추억만을 한 하얀 꽃위에 남겨둔체 생명의 눈을 감고 있었다. 안녕. 진한 향을 머금던 작은 꽃들아. 따스한 봄날, 가늘고 여린 줄기로 아침을 맞이하고 있을때, 그대가 머금고 있던 아침 이슬은 그 어떤 무엇보다도 진한 향을 머금고 있었어요. 그대에게는 미안했지만 초록의 작은 잎을 내게 주..
늘 혼자 설레인다. 그 사람이 어떤 생각을 하는지 전혀 모른체 혼자서 상상의 나래란 나래는 다 펼쳐 놓는다. 그에대해서는 아는 것이라고는 한정적인 정보들 뿐이다. 머리카락 색깔, 맑은 눈동자, 안경의 유무, 얼굴의 형태, 미소, 장소마다 바뀌는 옷차림, 눈에 띌 정도의 습관들 정도. 무엇때문인지 나는 그 한정적 정보의 틀안에 빠져들어가게된다. 그리고 나머지 모든 빈 부분들은 망상이라는 상상의 나래에 맡겨져 오해되고 왜곡된다. 그 틀안에서 우리는 존재하지 않고 나혼자만 덩그러니 놓이게된다. 현실은 외면당한다. 그 상태를 지속하다보면 상처를 입는 것은 자기 자신이 되어버린다. 자신이 공상한 세계는 현실과는 이치가 전혀 맞지않다. 진짜 이상향은 저기 구름너머 천국에만 있을 뿐, 이곳에는 적용되지 않는다. 내가..
승강기를 타고 무심결에 올라가다 구석에 꽂혀진 시를 읽게 되었다. "차는 지나치지 않다." 무엇이 지나치지 않다는 것일까. 지나친 것은 어떤 것이길래 지나치지 않다는 표현을 쓴 것일까. 따스한 찻잔에 손을 기대며 그 기운을 느끼며 마시는 차에게는 어떤 힘이 담겨져 있던 것일까. 이전에 혼자 보성까지 자전거타고 그 높은 고산지대로 올라가, 휴게소에서 공짜로 얻어마시게된 발효녹차가 기억이 났다. 차라고는 실론티같은 대기업에서 대량 생산해서 파는 홍차나, 흔히 마실 수 있는 티팩 녹차가 전부였던 나였다. 아주머니의 친절한 미소와 함께 받아든 차를 가지고 전망 좋아보이는 구석 쯤에서 혼자 차를 가지고 자리를 틀었다. 녹초가 된 내겐 뜨거운 차를 마시게 된 것에 불만아닌 불만이 내심있었지만, 약간의 구릿빛이 나는..
누군가의 음악을 듣기위해 자신이 모아둔 CD를 둘러보는 시대는 뒤로 물러났다. 내가 태어나기 이전 시대에는 LP라는 거추장스럽게 큰 CD를 측음기같은 곳에 끼워 듣곤 했다는데 전혀 믿겨지지가 않는다. 나는 손가락 하나를 움직이며 수천 곡의 음악을 들을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다. 그럼에도 나는 불가능 한 것이 있다고 생각했다. 자연을 컴퓨터에 담는 다는 것. 그것은 인간이 담기엔 너무나도 커다랗고 위대한 것이여서 전혀 담을 수 없다고 믿었다. 생각해보면 바보같은 생각이다. 인간의 상상력에 의해 화폭에 옮겨진 다양한 그림들을 보면 알 수 있다. 물감이라는 도구를 이용하듯, 컴퓨터라는 도구를 이용하여 자연을 디지털화하여 담아두었다. 그리고 그 저장된 디지털은 아날로그로 살아나 스피커를 통해 모두에게 공개되었..
양력으로 맞이한 날... 정신은 둔감해지고 흐릿해져갔다. 하지만 밤 공기를 가르며 들려오는 귀뚜라미 소리는 뚜렷히 들렸다. 잠시 눈을 감다가 창밖의 풍경을 바라다본다. 밤동안 내린 비로인해서인지 어둠은 전보다 짙었다. 짙은 구름은 도시의 야경을 흡수하여 어둡고 칙칙한 주황빛을 빛내고 있다. 아직 새벽에 잠을 못이루는 어느 누군가는 자신의 존재를 형광등 불빛으로 옅게 빛냈다. 어느 누군가의 소란스러운 오토바이 소리가 멀리멀리 떨어진 나에게 까지 전해져왔다. 컴퓨터로 인해 데워진 공기가 밖으로 슬그머니 빠져나가자 창 밖의 차가운 대기가 내 방으로 침투해 들어왔다. 얼음처럼 차가운 공기가 내 몸을 스치며 지나가자 찝찝해진 내 마음도 씻겨진 듯 맑아진 것 같았다. 밤은 적막하다. 나를 조용히 재울 기세로 묵묵한..
- 포항으로 여행간 이유를 답하라면? ... 뭐 그렇고 그런거지. 별거 있겠어? 이 여행을 계획한 이유는 매우 단순한 일 때문이었다. 친구녀석이 급작스럽게 전화와서는 "회 한사발 먹고싶어"라고 툭 뱉고는 무심히 침묵을 이었다. 그렇게까지 서로 시끄럽게 떠들어 재끼는 성격이 아니라서, 오랫동안 묵묵히 있었다. 의자에 기대어 느긋하게 선풍기가 쏴주는 기류를 느끼다가, 문득 죽도시장이 회가 싸다는 이야기를 들은 것이 떠올랐다. 그 즉시, 난 녀석에게 포항으로 여행가자고 제안했다. 물론 근처 횟집에 가는 방법도 있었지만, 나는 강렬하게 여행을 원했고, 사실 녀석도 반복적인 일상에 지쳐버린터라 나의 여행계획에 완전 동의하고 말았다. 그때 예전 군대에 있을적에 접어두었던 포항 여행계획을 민간인이 된 지금에서야 소환..
그 사람에게 풍기는 기운이란게 있다. 어떤 누군가와 같이 있을때는 축 쳐져지고, 숙연해지며, 깊어지게 만드는가하면, 다른 어떤 누군가와 있으면 늘 웃을 수 있고, 쾌할해지며, 즐거워진다. 어디서 무엇때문에 그것이 그렇게 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 사람에게 숨겨진 내공이 아닐까 싶다. 그 사람은 첫 만남에서 크게 호감을 줄 정도의 외모를 가진 사람은 아니다. 그저 허름한 청바지에 플라스틱 장식품을 달고 있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 사람의 눈은 크게 빛나고 있었다. 어떤 고된 풍파마져도 이겨낼 미소가 담겨져 있었고, 당당한 웃음 소리가 그 사람을 휘감고 있었다. 정말 멋지고 예쁘며, 아름다운 사람이었다. 나도 저렇게 멋진 어른이 될 수 있을까. 고된 군생활을 겪고도 아직 고등학생의, 아니 중학생의 어린 마..
조용히 깔리는 음악과 함께 사색하고 싶다. 어둡고 깊은 새벽은, 너무나 조용해서 탈이야. 모든 존재들을 검은색으로 덮어버리지만, 또 그렇기에 누군가를 그립게 만들거든. 잊고 싶지않아! 하지만 잊혀지고, 지워지고, 침식되어 가버렸지. 뭘 전달하는지 전혀 알기 힘든 영화도 보고 싶어. 감성에 젖어드는 음악과 함께 하고 싶어. 1권정도로 짧막한 풋풋한 소설도 읽고 싶어. 허세가득한 만화책도 보고 싶고. 작은 글 마디마디 하나에 심도 깊이 스며든 영혼을 느낄만한 시도 느끼고파. 요즘은, 진짜로 살아있다고 느낀다니까! 냐하하하하
설악산의 밤 하늘은, 달하나만 덩그러니 외롭게 떠있었다. 모든 다른 별들의 빛들은 달빛에의해 묻혀버렸다. 지구 밤 하늘계의 제 1인자인 달은 스스로 천상천하 유아독존을 외치며 자신의 자리를 고수하고 있었다. 사람이 언어를 만든지 2만년이 지났고, 한글을 창제한지 5백년이 흘렀음에도, 나는 아직 이 설악산의 풍경을 설명할 만한 단어를 찾아내지 못하고 있었다. 내 필력의 모자람과 부재된 감수성을 거대한 자연앞에서 작은 미물이 되고서야 깨닿고 말았다. 수억년간 변화를 거듭하며 만들어진 이 설악산 풍경은 내가 가지고 있던, 내 속에 잠재되어있던 세계 그 이상을 뛰어넘은데다가 그 모든 상상력을 초월한 거대한 자연이었다. 산은 덩그러니 놓여있는 나를 발견한다. 그저 한낱 조그만하고 별거아닌 생명체에 불과해졌다. 강..
처음 여행할때, 이런 생각을 했다. "여행은 모든 것을 초기화 시킨다." 뭔가 있어보임직한 말을 되뇌이며 여행을 시작했다. 하지만 그 어떤 것도 초기화 되지 못했다. 어쩌면 나 자신을 찾은게 아닌가 싶기도 했는데, 그것도 아니였다. 그러다 느끼게 된 결론이 있다. "여행은 여행이였어." 그뿐이였다. 식당에서 밥을 먹다 어떤 아저씨랑 대화를 하게되었다. 합석은 아니였고 바로 옆자리여서 대화를 트게 됐는데, 그 아저씨는 자전거를 타고 여행하는 우리를 반기는 눈치였다.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다, 그 아저씨도 여행 중임을 알게 되었다. 꼭 여행이라기 보다, 직업적으로 이곳 저곳을 많이 다닌다고 했다. 회사 측에서도 그걸 바라고, 자신도 그걸 여행이라 생각하면서 다니면 재미난다고 했다. 근래에는 강원도에서 몇달 ..
나랏고기쌈이 외국고기랑 달라 서로 통하지 아니하므로, 이런 까닭에 어린 백성들을 계몽시켜주고자 하는 바가 있고, 아직도 갈매기살보다 목살이 맛있다며 고기맛에 참 의미를 깨닿지 못한 사람이 많으니, 마침내 그 뜻을 이루어 거금 2만원을 투자하여 갈매기 살을 직접 사먹어보니, 그 맛은 천상이요, 천하에서 그 육미를 따를자가 없느니라. -갈매기정음 서문- 바야흐로 2010년. 갈매기는 끼룩끼룩거리며 하늘을 날라댕기지만, 우리는 그걸잡아 고기로 구워먹는다. 아마, 중국에서 목격했던 비둘기구이 이후로 먹은 최초의 조류음식이 아닐까 싶다!! (사실은, 갈매기살=가로막이살..임... 흠냐) 엄허 저 팔뚝 부러워. 왼쪽은 갈매기 1만원어치! 오른쪽은 목살 1만원어치!! 아저씨랑 지현이랑 엄마랑 (사진에 없는) 나..!..
매실주는 쓰렸다. 오래전 지녔던 단맛은 사라지고 모두 알콜로 변해있었다. 입안에 매실 향이 번져감과 동시에 남아도는 씁슬함을 느끼며, 영화를 바라봐야만 했다. 누군가는 누군가의 가슴 속에서 살아간다. 오랫동안 연모한 사람의 품 속에서, 그 가슴에 머물기를 바란다. 형상이 기억된 추억들의 파편에 의해서, 외로운 날이면 그 누군가의 가느다란 어루만짐을 떠올린다. 그리고는 현실이라는 투정으로 과거를 지우고, 일어나지 않을 미래를 비관한다. 머나먼 시간이 흘러서야 후회만을 다짐한다. 영화는 기적이다. 60억 인구가 모여사는 지구에서, 60분의 1의 확률로 만난 누군가를, 다시 60억 분의 1의 확률로 다시금 만나고, 또 다시 60억 분의 1의 확률로 마지막을 장식한다. 과거를 그리는 복원사는 아픔으로 사라질 수..
1만 3천원 짜리 순천행 버스는 순순히 그 길을 달렸다. 나는 그렇게 친숙한 누군가를 만났고 친숙한 이야기를 하며 친숙하게 헤어졌다. 아마 그게 끝이리라 생각했는데. 1만 3천원 짜리 대구행 버스는 야밤을 질주했다. 늦은 밤에 장마까지 쏟아졌다. 국지성 장마는 오는 듯 마는 듯, 버스가 지나는 지역마다 내리거나 안내리거나를 반복한다. 밤의 거리에서 버스는 자신의 불빛만으로 의존하며 어둑한 고속도로를 나아간다. 간혹 누군가의 불빛이나, 고속도로에서 빛나는 주홍빛 가로등만이 버스의 존재를 알아차리게끔 만들었다. 순천에서 대구오는 길에, 늘 잠들어서 보지 못했던 섬진강 다리를 봤다. 720M 길이를 가진 섬진강 다리. 암흑이 내려앉은 밤 길에서 희미한 실루엣만을 간직한 다리를 목격한다. 묵묵히 그 자리를 지키..
풀잎은 쓰러져도 하늘을 보고 꽃피기는 쉬워도 아름답긴 어려워라 시대의 새벽길 홀로 걷다가 사랑과 죽음이 자유를 만나 언강 바다속으로 무덤도 없이 세찬 눈보라속으로 노래도 없이 꽃잎처럼 흘러 흘러 그대 잘가라 그대 눈물 이제 곧 강물되리니 그대 사랑 이제 곧 노래되리니 산을 입에 물고 나는 눈물의 작은 새여 뒤돌아 보지 말고 그대 잘가라. ... 정호승 시인께서 쓰신 시를, 김광석이 음악을 붙여 노래했다. 애절하다. 김광석이 마지막 생을 앞두고 만든 노래라, 그 애절함은 내 몸속 깊은 곳까지 파고든다. 무엇이 그렇게 애절했던 것일까. 무엇이 그리웠던 것일까. 30세의 생을 앞두고 무엇때문에 목숨을 끊어야 했을까. 삶을 스쳐가며 무엇을 앓았던 것일까. 그건 정말 앓은 것이 아니라 알게 되었기 때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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